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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토리] 대만 남쪽, 핑둥의 맑은 빛에 물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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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만 최남단 핑둥. 맑은 날이면 어김없이 투명하게 빛나는 바다 덕분에 웬만한 휴양지가 부럽지 않은 곳이다. 산과 바다를 품은 이 호젓한 현에서 평화로운 2박3일을 보냈다. 거대한 수족관에서 헤엄치는 물고기 떼를 마주하고, 최남단 곶에 선 하얀 등대 앞에서 탁 트인 바다를 바라봤다. 그리고 바다에 기대어 살아온 항구 마을에서 대만 남부 특유의 깊은 신앙과 마주했다.

둥룽궁의 황금 패루. 처음 보자마자 화려해서 시선을 사로잡았다
둥룽궁의 황금 패루. 처음 보자마자 화려해서 시선을 사로잡았다

물고기 떼와 함께 걷는 바닷속
국립해양생물박물관
National Museum of Marine Biology & Aquarium

핑둥에 위치한 국립해양생물박물관은 규모부터 압도적이다. 박물관 단지 면적만 35만㎡로, 축구장 50개에 해당하는 규모다. 이 넓은 공간을 600종 1만2,000여 마리의 해양 생물이 채우고 있다. 가오리 같은 어류는 물론 펭귄과 벨루가까지 물속에 사는 온갖 생명을 한자리에서 만날 수 있다. 두꺼운 아크릴 너머로 유유히 헤엄치는 벨루가를 보고 있으면 한참을 서 있게 된다.

국립해양생물박물관에는 여러 종류의 해양 생물을 관찰할 수 있다
국립해양생물박물관에는 여러 종류의 해양 생물을 관찰할 수 있다
밥 먹으러 오는 물고기 떼
밥 먹으러 오는 물고기 떼

인상 깊었던 건 난파선을 테마로 꾸민 ‘침몰선 탐험(Sunken Ship Adventure)’ 구역이다. 몰입감이 상당했다. 수족관 안쪽만 그렇게 꾸민 게 아니라, 관람객이 지나는 복도까지 같은 분위기로 이어진다. 덕분에 물 밖에 서 있으면서도 정말 가라앉은 배 속을 걷는 기분이 든다. 82.5m에 달하는 해저터널도 놓칠 수 없다. 아시아에서 가장 긴 해저터널로, 천천히 걷다 보면 발 하나 적시지 않고 바닷속을 유영하는 기분을 맛볼 수 있다. 먹이 주는 시간도 놓치지 말자. 여러 물고기가 한꺼번에 몰려들어 밥을 먹는 모습을 지켜보고 있으면, 어느새 시간이 훌쩍 지나간다.

탁 트인 바다, 그 끝의 하얀 등대
어롼비 등대
Eluanbi Lighthouse

남쪽으로 더 내려가면 대만 본섬의 가장 끝, 헝춘 반도에 어롼비 등대가 있다. 넓게 펼쳐진 바다를 배경으로 하얀 등대와 초록 잔디가 나란히 놓인 풍경은 한 폭의 그림 같았다. 눈이 시원해지고, 막힌 속이 뚫리는 듯 후련했다. 푸른 바다와 평화로운 공원이 어우러져, 반도 끝에서만 볼 수 있는 풍경을 만든다.

하얀 외관이 매력적인 어롼비 등대
하얀 외관이 매력적인 어롼비 등대
공원 사이로 바다가 보인다
공원 사이로 바다가 보인다

1883년 세워진 이 등대는 높이 21.4m의 흰색 주철 원형탑이다. 그런데 곱게만 보이는 겉모습과 달리 등대를 둘러싼 흰 성벽에는 총안이 뚫려 있고, 바깥으로는 해자가 둘러져 있다. 청나라 때 침입을 막기 위해 만든 방어 시설로, 이 때문에 어롼비 등대는 대만에서 유일한 무장 등대로 불린다.

모두의 염원을 담은 배
왕선문화관
Pingtung King Boat Museum

헝춘 반도를 벗어나 북쪽으로 올라가면 항구 마을 둥강에 닿는다. 둥강 사람들은 3년에 한 번 ‘잉왕 평안 제전’을 열어 하늘을 대신해 인간 세상을 돌며 역병과 액운을 거둬간다는 다섯 신을 맞이하고 배웅하는 축제다. 이런 신들을 '왕야'라 부르는데, 대만 남부 해안 마을에서 섬긴다. 마지막 날에는 역병과 액운을 실은 왕선에 불을 붙여 하늘로 돌려보낸다. 왕선을 보내는 방식은 원래 불태우거나 바다에 띄우는 두 가지였다. 현지 설명에 따르면 배가 닿은 마을이 제사를 지내거나 사당을 세워야 했던 부담 때문에 지금은 불태우는 방식이 남았다.

왕선 문화를 엿볼 수 있다
왕선 문화를 엿볼 수 있다

2024년 문을 연 왕선문화관은 왕선과 왕야 신앙을 한자리에 모은 박물관이다. 5층 건물에는 왕야 문화, 왕선 공예, 둥강 잉왕 제전 등 여러 주제로 전시가 짜여 있다. 가장 눈길을 끄는 건 로비에 놓인 거대한 왕선이다. 위층 통로로 올라가면 뱃머리의 조각과 갑판까지 들여다볼 수 있다. 로비의 배는 둥룽궁 왕선 제작팀이 실제 왕선과 같은 크기와 방식으로 만든 전시용 모형이다. 제전에 쓸 실제 왕선은 2년 전부터 별도로 제작하며, 제전 마지막 날 불길 속으로 사라진다. 다음 제전은 2027년으로 예정돼 있다.

신 앞에 무릎 꿇고 액운을 털어내다
둥강 둥룽궁
Donglong Temple

왕선문화관에서 배운 신앙이 실제로 어떻게 이어지는지 확인하고 싶다면 둥강 사람들의 신앙 중심지인 둥룽궁으로 가면 된다. 이곳의 주신은 온왕야다. 당나라 공신 온홍이 황명으로 천하를 순시하러 바다에 나갔다가 조난당한 뒤 신으로 추존됐다고 전해진다. 둥강에 정착한 이주민들은 항해의 안전과 마을의 평안을 빌며 온왕야를 섬겼고, 1706년 '둥강 온'이라는 글자가 적힌 목재가 해안으로 떠밀려 온 것을 계기로 사원을 세웠다고 한다. 오늘날 둥룽궁은 3년에 한 번 열리는 잉왕 평안 제전의 중심 무대다. 입구를 지키는 거대한 황금 패루부터 남다른 위용을 드러낸다.

향을 피우고 기도를 올리는 모습
향을 피우고 기도를 올리는 모습

둥룽궁에는 ‘책장개운’이라 불리는 독특한 의식도 있다. 신 앞에 무릎을 꿇으면 사원 관계자가 나뭇가지로 몸을 가볍게 두드려 액운을 털어준다. 신 앞에서 매를 맞는 시늉을 통해 잘못과 액운을 씻고 새로운 운을 맞이하는 상징적인 절차다. 평소에도 체험할 수 있다. 둥룽궁 옆 왕선 공장에서는 잉왕 평안 제전에 사용할 실제 왕선을 만든다. 박물관에서 배운 왕선 문화를 사원과 의례의 현장에서 이어서 만날 수 있는 셈이다.


출처 : 여행신문(https://www.traveltimes.co.kr/news/articleList.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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