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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국세에 걸맞은 출국자 권익보호 필요하다 [김기헌의 관광 시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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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헌 교수 / 영산대 관광컨벤션학과

김기헌 교수 / 영산대 관광컨벤션학과
                                                             김기헌 교수 / 영산대 관광컨벤션학과

매년 3천만 명에 육박하는 우리 국민이 국경을 넘는다. 누군가는 이를 두고 심각한 관광수지 적자나 지역 소멸 위기 속의 외화 유출이라며 우려 섞인 시선을 보내기도 한다. 정부와 지자체 역시 국내 관광 활성화를 위해 ‘반값 여행’과 이벤트 등 온갖 처방을 쏟아내지만, 지원금이 많은 특정 지역으로만 사람이 몰리는 관광의 부익부 빈익빈 현상만 심화할 뿐, 지역 경제 구석구석으로 온기가 퍼지지 못하는 것이 엄연한 현실이다.

그러나 이제 패러다임을 바꿔야 할 때다. 해외여행은 더 이상 사치나 일탈이 아니다. 우리 국민에게 해외여행은 넓은 세계를 경험하고 삶의 에너지를 채우는 중요한 생활의 일부이자 국민 복지의 영역으로 자리 잡았다. 그런데도 우리의 관광 정책은 여전히 외래객 3천만 명 유치나 국내 여행 활성화라는 반쪽짜리 프레임에만 갇혀 있다. 정작 당당히 출국세를 납부하고 나가는 우리 국민의 권익과 안전을 체계적으로 보살펴주는 전문 기관은 어디에도 보이지 않는다.

20년 전인 2006년, 중국 장자제를 방문했을 때의 기억이 지금도 생생하다. 당시 연간 30만 명이 넘는 한국인이 그 비경을 보러 찾았지만 직항 노선조차 없었다. 상하이를 거쳐 현지 항공기로 갈아타는 과정에서 예보도 없이 항공편이 취소되어 공항에서 발을 동동 굴러야 했다. 천신만고 끝에 도착한 관광지에서도 상황은 다르지 않았다. 뙤약볕 아래 끝도 없이 늘어선 한국인 관광객들은 현지 가이드들의 안내를 넘어선 고압적인 통제와 지시를 받아야 했고, 그 수많은 인파 속에서 제대로 된 한국어 안내판 하나 찾아보기 힘들었다. 비싼 비용을 지불하고도 왜 이런 부당한 대우를 받아야 하는지, 서글픔과 분통이 터졌던 악몽 같은 기억이다.

귀국 후 나는 우리의 관광 정책을 외래객 유치(Inbound)와 내국인 해외여행 (Outbound)이 균형 있게 상생하는 ‘투웨이 투어리즘(Two-way Tourism)’으로 전환해야 한다고 강하게 주장했다. 국민이 정부에 납부하는 출국세가 그 소중한 가치만큼 쓰일 수 있도록, 내국인이 연간 30만 명 이상 찾는 주요 해외 거점 도시나 국가에 관광 전문관을 파견해 현지 당국과 직접 소통하고 불편을 개선하자고 건의했다. 하지만 당시에는 시기상조라는 이유로 묻혔고, 그 안일함의 대가는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최근 겪은 경험은 대한민국의 관광 행정이 얼마나 제자리걸음을 걷고 있는지 여실히 보여준다. 2년 전 동남아 여행 중 이용했던 한 말레이시아 저비용 항공사(LCC)의 일방적인 지연과 무성의한 대처로 인해, 차가운 쿠알라룸푸르공항 바닥에서 밤을 지새워야 했다. 심지어 새벽에야 출근한 매니저에게 항의한 후에 받은 티켓도 원래 목적지였던 부산이 아닌 인천공항으로 향하는 것이어서 황당했다. 귀국 후 실질적인 재발 방지 대책과 국내 연락처 부재 등의 시스템 개선을 기대하며 한국소비자원의 문을 두드렸지만, 돌아온 결과는 허탈함 그 자체였다. 항공 절차나 서비스에 대한 진정성 있는 사과는커녕, 서울에서 부산까지의 KTX 요금 단돈 5만9,800원을 보상액으로 제시한 최종 조정서를 받았다. 대한민국 공기관의 전형적인 탁상공론과 형식적인 행정에 깊은 불신과 자괴감이 밀려왔다. 모든 생활 소비재를 범용적으로 다루는 소비자원에 전문적인 관광 영역의 분쟁 해결을 맡기는 것 자체가 애초에 실효성 없는 미봉책이었던 것이다.

우리나라를 찾는 외국인 관광객을 위해서는 관광불편신고센터가 24시간 가동된다. 한국관광공사가 주도적으로 문제를 해결하고, 해당 업체를 고발하거나 행정 조치를 취하며 재발 방지에 총력을 기울인다. 반면, 매년 수천억 원의 출국세를 내며 국가 재정에 기여하는 우리 국민이 해외에서 상습적인 항공사 갑질, 현지 여행사의 횡포, 쇼핑 바가지 등의 부당한 대우를 받을 때는 국가가 철저히 방관자가 된다. 해외에서의 국민 보호는 외교부의 몫이라지만, 관광 서비스의 질적 개선과 권익 보호라는 전문적인 영역까지 외교관들이 해결해 주기는 어렵다.

지금 정부는 출국세 인상 방안을 검토 중이라고 한다. 세금을 올리기에 앞서 반드시 전제되어야 할 조건이 있다. 바로 출국세에 걸맞은 출국자 권익 보호 대책이다. 이제라도 관광 분야의 전문성과 권위를 갖춘 해외여행 전문 불편센터를 정부 주도로 출범해야 한다. 나아가 우리 국민이 많이 찾는 전 세계 주요 거점 도시에 전문관을 배치해야 한다. 이들이 현지 관광 당국과 상시적인 협력 체계를 구축해 한국어 안내판을 확충하고, 부당한 서비스 관행을 감시하며, 상습적으로 소비자를 기만하는 항공사나 현지 업체에 국가적인 차원에서 강력한 경고와 제재를 가해야 한다.

국력은 단순히 경제 지표나 수출액으로만 증명되는 것이 아니다. 우리 국민이 지구촌 어디를 가더라도 당당하게 대우받고, 예기치 못한 불편을 겪을 때 국가가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주는 것, 그것이 진정한 문화강국의 품격이다. 출국세 인상이 국민에게 아까운 세금 쪼개기가 아닌, 전 세계 어디서나 나의 안전과 품격을 지켜주는 가장 든든한 여행 보험으로 다가올 수 있기를 소망한다. 당당하게 떠나는 3천만 우리 국민의 발걸음 뒤에 이제는 국가가 응답할 때다.


출처 : 여행신문(https://www.traveltimes.co.kr/news/articleList.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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