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헌의 관광 시론] 관광 벤처, ‘보호막’을 넘어 ‘야생성’으로 승부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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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헌 교수 / 영산대 관광컨벤션학과

바야흐로 벤처의 시대다. 정부의 전폭적인 지원과 성공 사례들이 맞물리며 대학 졸업생들에게 창업은 이제 취업만큼이나 보편적인 선택지가 되었다. 특히 창의적인 아이디어로 관광의 불편함을 해소하고 새로운 콘텐츠를 공급하는 ‘관광 벤처’는 침체된 관광 생태계에 활력을 불어넣는 희망의 등불로 자리 잡았다.
필자는 2017년 관광기업지원단장으로서 서울 중구 무교동 서울센터에 관광벤처보육센터를 확장하고 벤처 정책을 입안했으며, 이후 부산관광기업지원센터의 초대 센터장을 자원하며 수많은 창업가와 호흡했다. 이른바 ‘죽음의 계곡(Death Valley)’이라 불리는 창업 후 7년의 험난한 여정을 함께 고민하고, 판로 개척을 위해 현장을 누볐던 시간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한 기억이다. 하지만 업계의 원로로서, 그리고 현장을 지켰던 실무자로서 오늘날의 벤처 육성 정책을 바라보는 마음 한편에는 무거운 우려가 상존한다.
마이크로소프트의 빌 게이츠, 애플의 스티브 잡스, 페이스북의 마크 저커버그. 세계를 뒤흔든 이들의 공통점은 화려한 지원책이 아니라 차가운 창고 공간에서 젊음을 불사른 ‘헝그리 정신’에 있었다. 열악한 환경은 그들에게 투지와 창의성을 강요했고, 그것이 곧 거대 기업의 뿌리가 되었다. 솔직히 고백하건대, 필자는 현대식 시설을 갖춘 관광기업보육센터를 구성하며 마음이 무거웠다. 호텔처럼 쾌적한 공간에서 경제적 결핍 없이 지내는 이들이, 훗날 센터를 나가 자비로 임대료를 내며 거친 시장 경쟁을 견뎌낼 수 있을까 하는 걱정 때문이었다. 비 한 방울 없이 햇빛만 내리쬐는 날씨가 지속되면 땅은 결국 사막이 된다. 과도한 보호막과 무분별한 지원은 벤처 본연의 야생성을 거세하고, 정부 지원금 없이는 연명하지 못하는 ‘좀비 기업’을 양산할 위험이 크다.
부산관광기업지원센터 초대 센터장 시절, 필자는 1기 입주 기업들을 마치 사관학교 생도처럼 엄격하게 관리했다. 코로나19 팬데믹이 정점에 달했을 때, 많은 대표가 위축되어 출근을 꺼리던 시기가 있었다. 나는 일일이 전화를 걸어 단호하게 경고했다. “일주일 내로 출근하지 않는다면, 대기 중인 다른 기업에게 사무실을 양도하겠다.” 단순히 머릿수를 채우기 위함이 아니었다. 환갑의 센터장인 나도 매일 아침 6시, 지하철을 타고 1시간을 이동해 방역 수칙을 지키며 자리를 지켰다. 죽을 각오로 신사업을 성공시켜야 할 벤처가 집에서 편하게 사업을 하겠다는 것은 사실상 포기 선언과 다름없기 때문이다. 당시에는 ‘호랑이 선생님’이라 불릴 만큼 냉정하게 관리하고 공모 서류 작성을 혹독하게 지도했지만, 그때의 긴장감이 밑거름이 되어 지금은 부산을 대표하는 강소기업으로 성장한 제자들을 볼 때면 깊은 보람을 느낀다.
이제 우리나라의 벤처 정책은 패러다임을 전환해야 한다. 단순히 일자리 수치를 채우기 위해 혈세를 골고루 나눠주는 방식은 지양해야 한다. 세금 지원 없이는 자생할 수 없는 기업들을 양산하는 것은 국가적으로도, 창업자 개인에게도 불행한 일이다. 진정한 벤처 육성이란 1만 명을 먹여 살릴 수 있는 ‘유니콘 기업’을 만들어내는 데 목적이 있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모든 기업에 대한 평등한 지원이 아니라, 성장 가능성이 검증된 곳에 역량을 집중하는 ‘선택과 집중’, 그리고 냉정한 성과 관리를 통한 ‘차별적 육성 정책’이 필요하다. 정부와 지자체는 좋은 환경만 만들어주면 성공이 보장된다는 환상에서 벗어나야 한다. 이들이 치열한 기업 생태계에서 살아남을 수 있도록 단계적인 보호와 함께, 때로는 폭풍우를 견디게 하는 단호함이 병행되어야 한다.
관광 벤처는 단순한 생계형 창업이 아니다. 그것은 대한민국 관광의 미래를 설계하는 고도의 창의 활동이다. 국민의 소중한 혈세가 좀비 기업의 연명 수단이 아닌, 세계적인 유니콘 기업의 탄생을 위한 밀알이 되기를 소망한다. 야생성을 잃지 않는 벤처, 그리고 그들의 도전을 매섭게 채찍질하면서도 진심으로 응원하는 정책이 만날 때, 대한민국의 관광은 비로소 세계의 중심에 설 수 있을 것이다.
출처 : 여행신문(https://www.traveltimes.co.kr/news/articleList.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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