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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현의 트렌드 리포트] 하늘 위의 트렌드: 비행에서 읽는 요즘 세상의 변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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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현 연세대학교 국가관리연구원 객원교수
leesanghyun@yonsei.ac.kr

                      이상현 연세대학교 국가관리연구원 객원교수 
                      이상현 연세대학교 국가관리연구원 객원교수 

얼마 전, 인천공항 보안검색대를 통과하던 중이었다. 몸에 아무것도 없는데, 갑자기 “삐이” 하는 경보음이 울렸다. 늘 같은 옷, 같은 노트북, 같은 출국의 풍경이었지만, 그날은 이상하게 그 소리가 나를 멈춰 세웠다. 이유를 묻자 직원이 미소 지으며 말했다. “가끔은 랜덤으로 울리기도 해요.”

알고 보니 일부러 그렇게 설계되어 있었다. 누구도 완벽히 예측할 수 없게, 일부러 약간의 랜덤하게 울리는 무작위성을 넣어두는 것이다. 보안 시스템조차 공정함을 위해 확률을 배우다니! 하늘로 오르기 전부터 이미 세상은 인공지능의 알고리즘과 인간의 신뢰 사이에서 균형을 찾고 있었다.

기내에 들어서자 가장 먼저 눈에 띈 건 마스크였다. 예전엔 병을 막기 위한 장치였지만, 지금은 심리적 방패처럼 보인다. 공기는 깨끗하다. 2~3분마다 완전히 순환되는 HEPA 필터 덕분에 수술실 수준의 청결을 유지한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옆자리의 기침 한 번에, 여전히 마스크를 고쳐 쓴다. 이건 단순한 위생이 아니라 안심을 소비하는 시대의 풍경이다. 우리는 이제 건강보다 마음의 위생을 더 중요하게 여긴다.

자리에 앉아 음료를 고르며 눈길이 간 건 토마토 주스였다. 이상하게 비행기 안에서는 이 음료가 인기다. 루프트한자항공의 조사에 따르면 지상에서는 거의 찾지 않던 승객들도 기내에서는 토마토 주스를 주문한다. 고도 1만 미터에서는 미각이 약 30% 둔해지는데, 단맛과 짠맛은 사라져도 감칠맛은 그대로 남기 때문이다. 과한 자극 대신 미묘한 풍미를 찾는 감각. 그건 지금 세상에서도 통한다. 모든 게 넘쳐나는 시대, 자극을 줄이는 것이 오히려 사치가 되었다.

비행이 시작되고, 기내가 고요해질 무렵 와이파이를 연결해보려 했지만 느렸다. 지구 궤도를 한 바퀴 도는 위성 신호는 초당 10메가비트 남짓. 5G로 살던 세상에서 단숨에 1998년의 속도로 돌아간다. 처음엔 답답하지만 곧 묘한 안도감이 찾아온다. 메일도, 회의도, 메시지도 잠시 멈춘 그 시간 동안 생각은 천천히 따라잡는다. 끊임없이 연결된 세상에서 비행기는 여전히 몇 안 되는 단절의 공간이다. 불편함이 아니라, 잠시 멈출 수 있는 특권. 그 멈춤 속에서 사람들은 다시 자신과 연결된다.

그리고 문득 떠오른 의문 하나. 왜 예전이나 지금이나 비행시간은 비슷할까? 기술은 그렇게 발전했는데, 서울에서 런던까지 여전히 12시간이 걸린다. 이유를 찾아보니 흥미로웠다. 최신 항공기들은 과거보다 오히려 6~8% 더 느리게 비행한다고 한다. 속도를 줄이는 대신 연료 효율을 높이고, 탄소 배출을 줄이기 위해서다. 빠름보다 효율, 속도보다 지속가능성을 선택한 셈이다. 비행마저 이제는 ‘빨리’보다 ‘지속가능하게’ 나는 시대다.

조명이 어두워지고, 식사가 끝난 뒤 40분쯤 지났을 때, 기내는 가장 고요하다. 그때가 가장 졸리기도 하다. 산소 농도가 낮아져 몸은 본능적으로 휴식을 요구하고, 책을 펼치면 글자 대신 마음이 열린다. 어쩌면 우리가 여행을 통해 얻는 건 새로운 장소보다 잠시 ‘멈출 수 있는 시간’인지 모른다.

좌석을 뒤로 젖히려다 문득 생각한다. 비행기 좌석의 리클라인 각도는 113도에서 118도 사이로 정해져 있다. 그 각도는 단순히 인체공학의 결과가 아니다. 너무 눕히면 불만이, 너무 세우면 피로가 쌓이기 때문이다. 수백 번의 테스트 끝에 가장 ‘덜 싸우는’ 각도가 만들어졌다.

기내 조명 또한 생체리듬을 고려해 설계됐다. 낮에는 백색광으로, 밤에는 붉은 톤으로 멜라토닌을 조절한다. 하늘 위에서도 기술은 사람의 몸과 마음을 중심으로 진화한다. 결국 인간의 리듬을 맞춰주는 기술이야말로 진짜 혁신이다.

승무원들은 그 모든 변화의 최전선에 서 있다. 그들은 매일 수백 명의 표정을 관찰하고, 단 10초 안에 그날의 분위기를 읽는다. 취한 승객, 불안한 사람, 협조적인 사람. 기내는 늘 인간관찰의 실험실이다.

한 승무원이 말했다. “비행은 인생의 축소판이에요. 이륙, 상승, 흔들림, 착륙까지 다 있죠.” 그 말이 오래 남았다. 하늘 위에서는 모든 인생이 지나간다. 누군가는 첫 비행에 설레고, 누군가는 이별 후 돌아가며, 또 누군가는 새로운 삶으로 향한다.

비행은 결국, 사람의 이야기다. 공항의 랜덤 알람, 느린 인터넷, 심심한 토마토 주스, 조용한 조명, 승무원의 눈빛 하나까지. 그리고 예전보다 느려진 비행 속도까지. 이 모두가 지금 세상의 단면이다. 불안의 시대에는 ‘심리적 위생’을, 과잉의 시대에는 ‘감각의 절제’를, 속도의 시대에는 ‘멈춤의 미학’을, 그리고 효율의 시대에는 ‘조금 느리게 가는 용기’를 배운다.

비행기는 단지 이동의 수단이 아니다. 세상을 관찰하는 하나의 거울이고, 우리가 어디로 가고 있는지를 조용히 보여주는 실험실이다. 하늘 위에서야 비로소, 세상의 트렌드가 눈에 보이기 시작한다.

 

이상현 연세대학교 국가관리연구원 객원교수 

leesanghyun@yonsei.ac.kr


출처 : 여행신문(https://www.traveltimes.co.kr/news/articleList.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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