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헌의 관광 시론] 관광대국, ‘현장의 목소리’에서 답을 찾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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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한류 기반의 교육사업 구상을 위해 동남아 5개국의 관광업계 인사들을 만나는 긴 여정을 다녀왔다. 한국 관광의 최전선에서 그들의 목소리를 듣는 것은 내 관광 인생을 다시금 되돌아보게 하는 소중한 시간이었다. 자카르타 신공항에서 마주한 자동 입국 시스템은 매우 인상적이었다. 온라인으로 사전에 정보를 등록하면 여권 스캔과 안면인식만으로 입국절차가 끝나는 신속함 속에서, 방문객들은 환대받고 있다는 정서적 만족감을 느낀다. 인도네시아의 변화와 관광에 대한 투자와 노력이 대단해 보인다. 반면, 최소한의 정보만으로 여행자를 맞이해야 하는 우리네 관광현실은 AI 시대에 걸맞은 데이터 기반의 맞춤형 마케팅을 어렵게 만드는 아쉬운 대목이었다.
이번 여정 내내 체감한 동남아 국가들의 합리적인 여행물가와 그랩(Grab)으로 대표되는 이동편의성은 관광객의 지갑을 여는 핵심동력이었다. 반면, 국내의 가파르게 상승한 체류비용과 더불어 동남아 국가들을 향한 높은 비자 정책의 벽은 현장의 여행사와 인플루언서들이 한목소리로 지적하는 우리 관광의 아픈 손가락이다.
현장에서 만난 파워 인플루언서들과의 대화는 마케터로서 나에게 근본적인 물음을 던졌다. 20년 전 말레이시아 지사장 시절, 대형여행사 위주의 마케팅을 펼치던 때와는 시장의 판도가 완전히 바뀌었다. 이제 여행사는 OTA(온라인 여행사)에 자리를 내주었고, FIT(개별여행객)가 대세가 되었다. 무엇보다 수십만 팔로워를 거느린 인플루언서들이 관광지 선택과 상품 판매에 결정적인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다. 아무리 뛰어난 관광상품도 현지의 눈높이와 트렌드를 읽어내지 못한다면 무용지물이다. 현장이 갈망하는 콘텐츠와 환대가 결합되지 않는다면 관광은 그저 스쳐 지나가는 소비에 불과하다. 상품의 우수성보다 중요한 것은 현지의 언어로 소통하는 맞춤형 전략임을 절감했다.
이제 우리 관광산업은 3,000만 외래관광객 유치를 목표로 질적 변화를 꾀해야 하는 변곡점에 서 있다. 이를 위해 현장의 실증적 경험을 바탕으로 우선 세 가지 급한 과제를 제언하고자 한다.
첫째, 데이터 기반의 섬세한 입국 서비스 설계이다. 우리는 오래전부터 입국카드를 받지 않고 있다. 편의를 위한 간소화 정책은 긍정적이나, 그 과정에서 놓치고 있는 귀중한 여행자 데이터를 디지털 환경에 맞춰 어떻게 재구조화할 것인가를 고민해야 한다. 방문객의 입국 동기 등 실질적인 데이터를 정밀 분석할 때, 비로소 맞춤형 서비스와 타깃 마케팅 전략이 실효를 거둘 수 있다.
둘째, 비자 정책의 전략적 유연성 확보이다. 불법체류 최소화라는 국가적 목적은 공고히 하면서도, 잠재 관광객들에게 한국이 가고 싶지만 가기 힘든 곳이라는 인식을 주어서는 안 된다. 행정 효율보다 방문객의 실질적 경험을 우선하는 비자 정책의 지혜가 필요하다. 보안과 관광 진흥이 조화를 이룰 때, 한국은 비로소 세계인 누구나 언제든 다시 찾고 싶은 나라가 될 수 있다.
셋째, 현장중심의 관광 생태계 확립이다. 해외 최전선에서 뛰고 있는 관광공사 지사, 여행사, 그리고 한류 파워 인플루언서들은 우리 관광의 가장 강력한 자산이다. 이들의 생생한 목소리를 정책과 마케팅에 즉각 반영하는 상시 소통 채널을 구축하여, 진정한 ‘윈-윈(Win-Win)’의 선순환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 탁상공론적인 정책과 지원제도를 과감히 탈피하여, 실질적인 고객의 불편과 니즈를 정확히 파악하고 서비스와 상품을 개선하는 것이 현장중심 관광의 핵심이다.
관광산업은 기술이 고도화될수록 역설적으로 더 ‘사람’을 향해야 한다. 인공지능이 방대한 정보를 쏟아내는 시대일수록, 현장에서 체득한 진심과 문맥을 읽어내는 기획력이 승부를 가른다. 우리가 일방적으로 제시하는 콘텐츠가 아니라, 세계의 청년들이 한국을 자신들의 이야기로 경험하고 좋은 구전을 전하게 만드는 것, 이것이야말로 대한민국이 글로벌 한류의 중심지로서 지속 가능한 관광대국으로 나아가는 유일한 길이다.
이제는 책상 앞의 전략을 넘어, 현장의 뜨거운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할 때다. 탁상행정의 폐해를 걷어내고, 쓴소리지만 날것 그대로의 생생한 목소리를 정책에 녹여내야 한다. 세계 곳곳에서 한국을 알리는 이들과 함께 호흡하며, 대한민국 관광의 새로운 지도를 그려나갈 준비가 우리에겐 필요하다. 우리 관광업계가 현장과의 깊은 연대를 통해 한국이 단순한 방문지를 넘어 다시 찾고 싶은 삶의 터전이 되고, 관광객과 지역 주민이 함께 행복한 진정한 관광대국 대한민국이 되기를 진심으로 기대한다.
출처 : 여행신문(https://www.traveltimes.co.kr/news/articleList.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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